서론

서론: 천 일의 창

당신의 경제적 기대수명이 줄어들고 있다. 당신의 경력이 아니다. 지금 하는 일자리도 아니다. 한 인간으로서 당신이 지니는 경제적 존재 의미 전체가 줄어들고 있다. 우리는 전례 없는 변화의 역사적 시대, 우리 문명의 근본 규칙이 다시 쓰이고 있는 유한한 시간의 창 속을 살고 있다. 이것은 추측이 아니다. 이것은 상전이(phase transition)다.

이 글을 쓰는 나는 두 세계를 모두 본 사람이라는 특이한 짐을 지고 있다. 여러 해 동안 나는 매크로 헤지펀드 매니저였다. 내 일은 세계 금융 시스템의 균열을 찾아내고, 그것이 산산조각 나기 전에 거기에 베팅하는 것이었다. 나는 세계를 경제학자들이 묘사하는 대로가 아니라, 공포와 탐욕, 그리고 자본 흐름의 잔혹한 물리학이 지배하는 취약하고 서로 얽힌 네트워크로 보는 법을 배웠다.

그 뒤 나는 그 세계를 떠나 다음 세계의 엔진을 만드는 일을 도왔다. Stability AI의 창립자로서 나는 당신의 쓸모없음이 수학적으로 계산되는 방에 있었다. 악의에서가 아니라, 최적화의 피할 수 없는 결과로서 말이다. 나는 인공지능이 보고, 쓰고, 추론하고, 창조하는 법을 배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모든 지식 노동자에게 파멸을 예고하는 학습 곡선을 보았다.

이제 나는 한때 내가 이용하던 시스템을, 그것을 완전히 산산조각 낼 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이 책은 그 독특하고도 두려운 관점에서 태어났다. 이 책은 내부자의 진단이자 설계자의 청사진이다.

그러나 나를 괴롭히는 것은 이것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 즉 생물학의 제약으로부터 지능을 해방시키는 일을 이루어 가고 있는데, 우리의 경제 시스템은 그것을 오직 재앙으로만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론적 문제가 아니다. 그토록 비극적이지만 않다면 우스꽝스러웠을 우주적 농담이 여기 있다. 나는 그것을 **풍요의 덫(Abundance Trap)**이라 부른다. 우리는 지능의 영역에서 탈희소성을 달성하기 직전에 있는데, 희소성에 기반한 우리의 경제 시스템은 이 풍요를 빈곤으로 처리할 것이다. 우리가 세계를 측정하는 두 개의 계기판을 생각해 보라.

첫 번째는 낡은 경제의 공식 계기판이다. 주식 시장은 사상 최고치다. GDP 성장은 안정적이다. 실업률은 역사적으로 낮다. 우리 지도자들이 지켜보는 모든 지표로 볼 때, 우리는 이보다 더 번영한 적이 없다.

두 번째는 인간 현실의 계기판이다. 삶의 만족도는 기록이 시작된 이래 최저점에 있다. 자살, 약물 과다복용,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절망사는 전염병 수준이다. 한 세대 전체가 빚에 빠져 집을 사거나 가정을 꾸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근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서류상으로는 부유하고 정신적으로는 가난하다.

이 괴리는 붕괴하는 패러다임의 첫 번째 사이렌이다. 우리는 가장 위대한 성취가 멸종 사건이 되어 가는, 그토록 완벽하게 거꾸로 된 문명을 세워 놓았다.

지난번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경제학(economics)은 "가정 관리"를 뜻하는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아(oikonomía)"에서 시작되었다. 삼백 년 동안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공장처럼 관리했다. 우리는 효율을 신으로 삼았고, 왜 공허한지 의아해했다. 우리는 성장에 최적화했고, 왜 제자리걸음인지 의아해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운율을 맞춘다. 그리고 지금, 역사는 모든 경제적 멸종 사건을 특징지어 온 바로 그 치명적인 박자를 두드리고 있다.

슈폰하임(Sponheim)의 수도원장 요하네스 트리테미우스(Johannes Trithemius)를 생각해 보라. 그는 1492년에 "필경사 예찬(In Praise of Scribes)"이라는 열정적인 논고를 썼다. 그는 새로 나온 인쇄기가 한때의 유행에 불과하며, 손으로 베낀 필사본이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글을 베끼는 신성한 행위가 수도사들을 신에게 더 가까이 데려간다고 주장했다. 모든 논거는 신학적이고 철학적이고 미학적이었다. 어느 것도 진짜 이유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수도원의 수입은 책을 베끼는 데서 나왔다는 것 말이다.

오십 년 안에 필사실은 박물관이 되었다. 트리테미우스는, 기억되기라도 한다면, 인쇄기를 향해 "멈춰!"라고 외치며 역사를 가로막고 선 사람으로 기억된다.

당신이 트리테미우스다. 당신의 일은 손으로 필사본을 베끼는 것이다. AI가 인쇄기다. 그러나 그와 달리 당신에게는 오십 년이 없다. 의미 있는 선택의 창은 훨씬 더 짧다. 인쇄기의 비유는 거의 완벽하다. 거의. 차이점은, 구텐베르크의 기계는 베끼는 물리적 행위만을 대체했다는 것이다. AI는 정신 자체를 대체한다.

세 개의 미래, 출구는 없다

낡은 시스템이 실패하면서, 가능한 안정 상태는 오직 세 가지뿐이다. 전자 궤도처럼, 이것들만이 지속될 수 있는 유일한 패턴이다. 그 밖의 모든 것은 불안정한 전이 상태다.

첫 번째 미래: 디지털 봉건제(Digital Feudalism). 우리가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소수의 기업이 AI를 통제한다. 나머지 모두는 기본소득으로 살아간다. 생존하기에는 충분하지만 의미를 갖기에는 부족한 돈으로. 당신은 창조자가 아니라 사용자가 될 것이다. 시민이 아니라 소비자가 될 것이다. 분명히 말해 두자. 이것이 기본값이다. 우리는 지금 이쪽으로 가고 있다.

두 번째 미래: 대분열(the Great Fragmentation). 국가들이 공황에 빠질 때 벌어지는 일이다. 모든 나라가 자국의 AI를 만들고, 자국의 데이터를 지키고, 아무도 믿지 않는다. 원자 대신 알고리즘으로 싸우는 새로운 냉전이다. 이것은 공포 반응이다. 이것은 이미 시작되었다.

세 번째 미래: 인간 공생(Human Symbiosis). 우리가 의식적으로 진화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는 AI가 인간의 목적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증폭하는 경제 시스템을 만든다. 풍요가 버그가 아니라 기능인 세계. 지능이 상품이 아니라 공유재인 세계. 이것은 우리 자신이 변해야 하기에 가장 어려운 길이다. 또한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인간으로 남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이 책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 아닌지)

이 책은 AI에 대한 또 하나의 경고가 아니다. 화재경보가 너무 오래 울린 나머지 우리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법을 배웠다.

이 책은 AI 기술 매뉴얼이 아니다. 자동차가 말을 대체했음을 알기 위해 내연기관을 이해할 필요가 없듯이, 당신은 트랜스포머를 이해할 필요가 없다.

이 책은 세 번째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공학 매뉴얼이다. 낡은 원리들은 죽었기 때문에, 제1원리에서 그려 낸 청사진이다. 이 책은 새로운 세계를 위한 새로운 과학을 소개한다. 지능 이론(Intelligence Theory), 즉 정보가 처리되어 가치와 지속성을 창출하는 방식에 관한 물리학이다. **지능 경제학(Intelligent Economics)**은 그 첫 번째 응용이다.

첫 단계는 해체다. 여기서 우리는 당신이 경제학에 대해 가진 모든 가정을 산산조각 낼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새로운 물리학이다. 잔해 속에서 우리는 복잡계를 지배하는 진정한 법칙들을 도출할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건축으로, 이 새로운 물리학이 어떻게 필연적으로 건강한 경제의 구조를 만들어 내는지 보여 준다. 네 번째 단계는 청사진을 제공한다. 공생하는 세계를 위한 구체적이고 공학에 기반한 해법이다.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단계는 인간의 전환으로, 새로운 시대를 위한 당신의 개인적이고 철학적인 안내서다.

시계는 진짜다: 천 일의 창

이 창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말해 두겠다. 이것은 단일한 종말적 사건에 대한 예측이 아니다. 이것은 상전이가 되돌릴 수 없게 되는 역사적 시기에 대한 추정이다. 오랫동안 데워진 냄비 속의 물이 마침내 끓어오르는 지점이다. 그 순간 전에는 아직 불을 줄일 수 있다. 그 뒤에는, 당신이 무엇을 하든 물은 증기가 된다.

미래학자들은 오래전부터 기계 지능이 우리의 지능을 능가하는 순간, 기술적 특이점을 예언해 왔다. 지수 곡선에 대해서는 그들이 옳았다. 무엇이 먼저 부서질지에 대해서는 틀렸다. 우리는 순수하게 기술적인 특이점에 도달하기 훨씬 전에 **사회경제적 특이점(socio-economic Singularity)**을 향해 가고 있다. 돈과 노동과 의미에 관한 우리의 시스템은 거의 무한한 생산성의 압력 아래 산산조각 날 것이다.

이것은 종말의 마감 시한이 아니다. 의미 있는 선택의 마감 시한이다. AI의 능력, 비용, 채택의 지수 곡선을 지켜본 끝에 내린 이 창에 대한 나의 전문가적 추정치는 대략 천 일이다. 800일일 수도 있다. 1,200일일 수도 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그것이 10,000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릿수는 진짜다. 시계는 진짜다. 그리고 지금 째깍거리고 있다.

초대

여기까지 읽었다면 당신은 아마 세 부류 중 하나일 것이다. 겁에 질렸거나, 회의적이거나, 흥분했거나. 좋다. 세 가지 모두 한 세계의 종말에 대한 타당한 반응이다.

무엇이 당신을 여기로 데려왔든, 이것만은 알아 두라. 카운트다운은 진짜다. 낡은 세계는 끝나 가고 있다. 새로운 세계는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가교 세대, 두 세계 사이를 살도록 축복받고 또 저주받은 세대다.

당신은 이 결정적인 창의 시간을 부정 속에서 보내며 자신의 존재 의미가 증발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 이미 사라진 세계를 애도하며 절망 속에서 보낼 수도 있다. 아니면 인류를 전환기 너머로 실어 나를 시스템과 공동체를 만들며, 건설에 쓸 수도 있다.

옛 경제학자들에게는 이런 말이 있었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 케인스(Keynes)가 1923년에 쓴 말이다. 그는 틀렸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살아 있되, 경제적으로 무의미해진다. 존재 의미가 경제적이지 않은 경제를 우리가 건설하지 않는 한.

시계는 당신이 이 책을 펼치기 전에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신이 이 문장을 읽는 지금도 돌아가고 있다.

이제 시작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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